위원회 회의에서 탐방할 병원이 결정되고 나서 문영래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언제 그리고, 몇시까지 병원에 가면 될지 여쭈기 위해서 였다. 위원회의 병원 탐방을 반기시며, 뜻밖의 7시 40분에 첫 수술을 시작 하신다고 답해 주셨다. 7시 40분?! 서울에서 첫 기차를 타야 겨우 시간을 맞출 정도의 시간, 어쩌다 늦잠 잘 때는 집에서 병원으로 출근을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병원 탐방하는 날 아침이 되어 광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종일 수술을 하시는 날인가? 왜 이렇게 빨리 수술을 시작하시지? “ 하는 생각을 하며 졸다보니, 어느새 광주송정역에 도착했다. 문영래 원장님이 “병원 이사님이 모시러 갈꺼에요” 라며 답을 주셨는데, 성공한 회사 대표님 차 G90이 역에 나와 있었다. 차를 타자마자 운전하시는 분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아 사모님이시구나’ 고 눈치채고 실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문영래 선생님이 첫 수술을 준비하는 시간을 아껴주시기 위해 대신 직접 모시러 나왔다고 하니 너무 고마웠다.
그림 1. 생각보다 훨씬 컸던 문영래 정형외과 병원 규모
개업 하신지 5년밖에 안되셨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의 병원에 놀랐는데, 7시 37분 수술실로 올라가니 마취는 물론, 이미 drape이 다 되어 있었다. 수술은 medium to large size cuff tear였는데 patch graft 까지 하고도 25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문영래 선생님 뛰어난 수술 실력 뿐 아니라 어시스트는 마치 문영래 선생님이 손이 4개인거 처럼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셔틀 릴레이, anchor fixation 등이 도와주고 있었고, 정년퇴임 후 병원에 합류하셨다는 유병식 마취과 선생님은 필드와 모니터를 보며 bleeding 때문에 수술시야가 가리지는 않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마취과 선생님 께서는 매일 아침 수술환자 회진을 도시고, 수술이 위험할 경우 수술 일정 조정까지 해주신다고 하니 ‘Team 문영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림 2. 수술 시야를 수시로 보며 혈압과 약제를 조절하셨던 마취과 선생님의 매서운 눈빛
첫 수술이 끝나고 놀랍게도 오전 외래를 하러 내려가신다고 하셨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7시 40분에 첫 수술을 하는 이유를. 오전 외래 전에 매일같이 수술을 하나 하시고 하루를 시작하시는 스케쥴이었다. 마취과와 수술방이 그 시간에 준비가능한 시스템이 부러웠고, 그걸 매일같이 하고 있는 문영래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외래에서는 헤드셋을 쓰고, 스피커를 통해 환자분께 얘기하고 있었는데 훨씬 더 차분하게 느껴지고, 오랜시간 외래를 봐도 목이 상하지 않게 하는 노하우가 보였다. 좀더 경험이 쌓이면 한번 도입해보고 싶다. 초음파는 듀얼 모니터를 세팅해두어 어느 자세에서도 편하게 injection 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셨다. 병원으로 돌아와서 초음파실 듀얼 모니터를 바로 세팅하니 너무 편했다. 왜 목을 돌려가며 그렇게 주사를 놨던가. 왜 영화보고 할때만 듀얼을 생각했던가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문영래 원장님 외래에서는 증식치료, PRP 주사, TPI 주사치료 등을 진단과 치료 방향에 따라 양방으로 환자에 맞춤 치료를 하고 있었고, MRI가 2개가 있는 병원의 장점을 살려 당일 MRI 촬영이 가능하고 결과를 바로 설명해 줄 수 있는 환경이 너무 부러웠다.
그림 3-1. 헤드셋을 쓰고 진료하는 의사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성을 경청하는 환자들의 진료환경을 구축하신 문영래 선생님
그림 3-2. 활발했던 학회 활동의 영상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진료실 외부
그림 4. 자세를 바꾸지 않고 anterior to posterior 와 posterior to anterior injection 어느 방향으로도 편하게 가능하게 만든 Dual monitor system
10시쯤 되자 수술방에서 또다른 수술이 준비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Labral tear 환자, posterior labral tear까지 되어 있었는데 20여분이 안되어 마무리가 되었고, 이어진 외래에서는 초진 환자였지만, 수술전에 초진을 봤던 환자가 그 사이에 당일 MRI 를 촬영하고 결과를 듣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결정판이었다. 점심식사 후 또 수술방이 세팅이 되어 cuff 수술을 하셨고, 오후 외래 중간 3시경 또 한명의 cuff 수술을 하셨다. 종일 외래를 보시면서 4명의 수술이 끝나고 외래를 마치셨다. 딴에는 전공의가 나가면서 외래 보는 중간에 응급실 가서 Bimalleolus Fx splint 대고 외래 f/u 시키고, 정형외과 입원환자 내려서 foley insertion 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또다른 세계가 있었다. 수술1>오전 외래 1부>수술2>오전 외래 2부>점심>수술 3>오후 외래 1>수술4>오후 외래 4로 이어지는 스케쥴을 매일 소화하시는 문영래 선생님을 보며, 마치 내가 고등학교 공부가 힘들다고 대학생에게 투덜대는 풋내기 고등학생 같이 느껴졌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고 스스로를 돌아 보았다.
그림 5. 병원 Photo wall 앞에서 필자, 임태강 교수님, 문영래 교수님, 김종호 교수님
(어플을 써서 좀더 AI 생성형 인물같이 나온 모두들 ^^)
허벌나게 맛난 밑반찬과 허천나게 맛있는 육해공 요리들과 함께 짙어져가는 알코올 농도 속에 지나간 학회의 여러 추억과 그간 병원 운영하시는 동안, 힘들었던 마음 속 얘기를 들으며 간접적인 개원의의 고충도 살짝 느낄 수 있었고, 매년 학회를 위한 기부금에 대한 깊은 마음도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지면을 빌러 시간과 마음을 내주신 문영래 선생님과 전공의 사직기간에도 불구하고 당일치기로 광주까지 함께 달려간 대외협력위원회 임태강 교수님과 김종호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림 6. 탐방을 마치고, 식사장소에서 ‘어깨 건강 TV’ 기념 골프공과 함께